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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물회] <사피엔스> 19. 그리고 그들은 행복하게 살았다 - 진정한 행복은 무엇일까?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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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물회] <사피엔스> 19. 그리고 그들은 행복하게 살았다 - 진정한 행복은 무엇일까?

맛있는물회 2020. 6. 10. 00:28

<사피엔스> 19. 그리고 그들은 행복하게 살았다 - 진정한 행복은 무엇일까?

 

 

 

나는 행복한가? 라는 질문

행복을 추구한다는 것은 행복이 무엇인지 안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행복은 무엇인가를 바로 대답할 수 있을까?

부와 명예?
내가 행복하기 위해 추구하는 것은 무엇일까?

 

 

아주 철학적이고 심오한 질문을 연속적으로 던지는 장이다.

과연 우리는 행복한가? 

역사를 이해함으로써 우리는 더 행복해지고 있는가?

과학이 발전하면서 과거의 사람들보다 우리는 과연 더 행복한 삶을 살고 있을까?

등등..

우리의 내면을 파고드는 질문을 던진다.

아주 생각이 많아지는 장이다.

 

 

 

 

지난 5세기 동안 인류가 쌓아온 부는 현재의 인류에게 새로운 종류의 만족을 주었다고 볼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다. 과학과 산업혁명 덕분에 우리는 무한한 에너지를 사용할 수 있었으며, 큰 힘을 얻게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이 우리가 더욱 살기 좋은 세상에 살고 있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러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역사학자는 드물었다. 하지만 우리는 행복한가에 대한 질문은 우리에게 매우 근본적이며 중요한 질문이다.

행복에 대한 해석은 매우 주관적이다. 예를 들어 민족주의자는 정치적 자기결정권이, 공산주의자는 독재를 통한 정치체제가, 자본주의자는 자유시장이 행복을 만들어내는 요소라고 생각한다.

행복에 대해 장기적으로 연구한 사람은 드물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행복에 대해 막연한 선입견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수렵채집인보다 기술이 발전한 시대에 살았던 중세사람들이 더 행복했을 것이라는 진보적인 막연한 추측은 설득력이 없다. 

 

어떤이는 인간의 능력이 늘어날수록 사람들이 더 많은 영향력을 누리면서 더 행복해진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어떤이는 정반대의 견해를 내놓는다. 인류가 더 큰 힘을 가질 수록 차가운 기계적 세상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다른 주장은 중도적인 입장이다. 과학혁명이 일어나기 전에는 권력과 행복에 대한 상관관계가 없었다는 내용을 기반으로 하여 주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에서 몇 가지 오류가 발생한다. 첫째로 기간이 너무 짧다는 것이다. 두번째는 현재 이후의 미래에 대한 예측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즉, 현재의 긍정적인 상황이 미래에 큰 파국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행복을 평가할때는 오로지 상류층이나 유럽인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닌, 전 인류 그리고 인류만이 아닌, 모든 동물까지도 생각을 해야한다는 것이다.

 

 

 

* 행복 계산하기

 

지금까지 행복은 대체적으로 물질적인 요소의 산물로 이야기해왔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지금까지의 여러 연구와 실험을 통해 행복은 사회적,윤리적, 정신적 요인들도 큰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알아내었다.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은 무엇을 측정해야 하는지이다.

행복은 일반적으로 개인의 주관적 안녕이라고 받아들여진다.

이에 따르면 행복은 자신이 스스로 느끼는 무엇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주관적인 감정을 어떻게 측정할 수 있을까?

이를 위해 심리학자와 생물학자들은 사람들에게 설문지를 나누어주며 연구를 진행하였다.

(과연 자신의 감정이라는 것을 표현한다는 것이 충분한 신뢰가 존재할까?)

이러한 결과에는 여러 허점이 존재한다. 하지만 허점을 지적하기 전에 이런 접근법을 통해 알아낸 발견을 검토할 가치가 있다.

1) 돈이 실제로 행복을 가져다 준다.

-> 하지만 이는 어느 정도까지 이지만 사실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이것은 장기적으로는 큰 차이를 만들지 않을 것이다. 또한 개인마다 돈을 통해 느껴지는 행복의 정도가 다르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부자에게 돈이라는 요소로 큰 행복을 만들 수는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단순한 일반화를 진행한다는 것은 비합리적이다.

2) 질병은 행복과 큰 관계가 있다.

-> 질병은 단기적으로 행복감을 낮춘다. 또한 공동체의 몰락은 자신에게 행복의 감정을 감소시킨다. 그렇다면 산업혁명으로 인한 가까운 공동체 개념의 몰락은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이는 산업혁명을 통해 물질적 조건이 크게 개선된 것과 상쇄되었다고도 생각할 수 있겠다.

(과연 행복의 요소 즉, 물질적 요소를 통한 행복, 그리고 공동체를 통한 행복을 이렇게 단순히 수치화해서 계산할 수 있는 부분일까?)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행복이 객관적 조건에 좌우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예를 들어 자신이 5천년 전의 어느 마을의 젊은이라면 아마 스스로 외모가 괜찮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의 십대라면 그렇게 생각하기 어렵다. 왜냐면 대부분의 이들은 자신을 광고판의 영화배우, 운동선수 등과 비교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모든 것은 주관적이며 자신의 기대에 따라 달라진다.

 

 

 

 

 

*화학적 행복

 

생물학자들도 사회학자들과 마찬가지로 설문지를 통해서 행복에 대해 조사하지만 결과를 화학적이고 유전적 요인과 연관 짓는다.

생물학자들의 결과에 따르면 우리의 정신세계와 감정세계는 수백만 년의 진화에 의해 만들어진 생화학적 체제의 지배를 받는다는 것이다. 즉, 우리의 행복이 돈과 같은 외부 변수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닌, 우리 몸 속의 신경, 뉴런, 시냅스 등의 다양한 화학적 물질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다.

진화에서 행복과 불행이라는 감정이 맡는 역할은 생존과 번식에 대해서만 의미가 있다. 이를 위하여 우리 몸의 생화학 시스템은 인간의 몸의 온도가 36.5도를 유지하듯, 행복과 불행에 대한 감정 또한 사람 개개인의 기준을 통하여 유지되며 조절이 된다.  

만약 10점 만점에 한 사람의 행복지수가 3에서 7이라면 어떤 일이 있어도 7이상의 감정을 경험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연구 결과들은 심리학과 사회학의 연구결과와 잘 맞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이들은 서로 다른 관점에서 관찰하고 연구하는 것이지 어떤것이 틀리고 맞다라는 이야기는 하기 힘들다. 

결혼을 예로 들어볼 수 있다. 결혼한 사람들이 독신인 사람이나 이혼한 사람들보다 행복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결혼이 필연적으로 행복을 만들어 낸다는 것은 아니다. 

생물학자들 또한 행복이 주로 화학에 결정된다고 주장하는 것이지 심리, 사회학적 요인을 완전히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즉, 결혼과 같은 상황이 인간의 감정에 영향을 줄 수 는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만약 행복에 대한 생물학적 접근을 받아들인다면 대부분의 역사적 사건이 우리의 생화학에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에 역사는 우리의 행복에 대해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가 된다.

프랑스 혁명을 예로 든다면, 프랑스 사람들은 전쟁을 벌이고 여러가지 활동을 해왔지만 프랑스인들의 생화학 시스템을 바꾸지는 못했다. 즉, 프랑스인의 행복에 미친 영향은 크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프랑스 혁명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하지만 인류가 여러 활동을 해오면서 진화적인 요소에 큰 영향을 미쳐오지 않았을까?)

만약 우리의 행복에 영향을 끼치는 요소가 생화학 시스템을 조작하는 일 밖에 없다면 우리는 이러한 요법을 개발하는데 큰 투자를 진행해야한다. 

 

 

 

*삶의 의미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에서는 행복과 쾌감이 동일하다는 생물학적 가정을 기초로 하고 있다.

행복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해석이 존재한다.

1. 어떠한 행복에 대해 사람들은 무엇이 정말 자신에게 좋은지를 모른다는 뜻.

2. 행복이란 불쾌한 순간을 상홰하고 남는 여분의 즐거움이 아니라, 개인의 삶을 총체적으로 의미있고 가치있는 것으로 바라보는 데서 온다는 것

-> 이러한 차이를 결정하는 것은 개인의 가치체계이다.

즉, 우리가 살아야할 이유가 있다면 어떤 일이든 견뎌낼 수 있다는 것이다.

중세 사람들은 삶을 분 단위로 평가한다면 매우 힘들었을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죽음 뒤의 영원한 행복이라는 자신의 가치를 통해서 매우 행복하게 살았을 것이다.

 

인류는 목적이나 의도같은 것 없이 진행되는 진화과정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자신의 삶에 부여하는 가치는 그것이 무엇이든 망상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행복은 정말 자기기만에 달려있는 것일까? 자신의 가치에 부합하기만 하다면 행복하다고 느끼는 걸까?

 

 

 

 

* 너 자신을 알라

 

1. 만일 행복이 쾌락적 감각을 느끼는 데 기반을 두고 있다면?

-> 우리는 더 행복해지기 위해 생화학 시스템을 개조해야한다.

2. 만일 행복이 삶의 의미를 느끼는 데 기반을 두고 있다면?

-> 우리는 더 행복해지기 위해 스스로를 좀 더 효과적으로 기만해야한다. ( 가치 체계를 다듬어야한다)

 

위의 두 가정은 행복이 어떠한 주관적인 느낌이라는 가정을 바탕으로 한다. 

우리는 자유주의의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가정은 현대인들에게 논리적으로 보인다.

내가 좋다고 느끼는 것이 선이고, 내가 나쁘다고 느끼는 것은 악이다 라는 말이 있듯이 행복은 주관적이라는 느낌이라고 믿기 쉽다. 

하지만 이러한 견해는 자유주의에 특유한 것이다.

고대의 철학자들은 '너 자신을 알라'라고 이야기하곤 했다. 즉, 자기 파괴적인 행동을 하지 않게 하려면 타인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헤로인 중독자에게 행복하냐고 물었을때 마약을 하고 있을 때만 행복하다는 답이 나왔다고 가정한다면 헤로인이 행복의 핵심이라는 의미가 되지는 않는다.

 

대부분의 종교와 철학은 행복에 대해 자유주의와는 다른 접근법을 취했다. 그 중 불교는 행복의 문제를 어떤 종교나 이념보다도 중요하게 생각했다. 

불교는 행복이 외부가 아닌 신체 내부에서 일어나는 과정의 결과라고 이야기한다. 이는 기본적인 측면에서는 생물학적 접근과 유사하지만 결론에 있어서는 매우 다르다.

 

불교에 따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행복을 즐거운 감정, 고통을 불쾌한 감정으로 이야기한다. 

사람들은 불쾌한 감정인 고통을 잊기 위해 즐거운 감정을 얻으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이러한 즐거운 감정 또한 순식간에 지나가기 마련이다. 

불교에서는 이러한 덧없는 보상이 뭐가 중요하냐 라는 질문을 던진다. 

번뇌의 근원은 고통이나 슬픔과 같은 감정에 있는 것이아니라 순간적인 감정을 무의미하게 끝없이 추구하는 과정에 있다.

즉, 행복과 고통은 단순히 지나가는 감정일 뿐이니 이것에 얽매이지 말자는 것이다. 

 

행복은 내부에서 시작된다라고 뉴에이지 문화는 주장한다. 사실 우리가 스스로의 주관적 느낌을 중요하게 여기게 되면 더 많이 집착하고 괴로움 또한 더 심해지기 마련이다. 

우리가 행복을 얻을 수 있는 비결은 자신의 진실한 모습을 파악하는데 있다는 것이다. 

 

 

 

 

*결론

 

행복에 대한 연구는 최근의 일이며 이제 시작단계에 불과하다. 이러한 이야기의 결론을 짓기에는 너무 이르며 논의는 아직 시작조차 되지 않았다.

하지만 올바른 결과를 위해서 중요한 점은 수 많은 접근법을 많이 시도해보며 올바른 질문들을 던져보는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의 행복에 대한 공백을 채워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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